우리보다 한 발 앞서 '결혼 안 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서유럽의 경우 각각 생활 동반자 등록제가 발달해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1999년 PACs (시민연대 결합)이 등장한 이래 이제는 혼인신고보다도 더 흔한 대세가 되었다고 한다. 세제혜택(인적공제), 육아수당 등 결혼한 부부에게 적용되는 주요 사회보장혜택들이 PACs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니 굳이 기존의 결혼제도에 PACS를 추가로 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정리해 본 바로는 우리 나라 실정에 적용해 볼 경우 대략 다음과 같은 경우 효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동성커플의 파트너 등록
동성결혼이 불법이었던 아주 최근까지 생활 동반자 등록제는 동성커플의 혼인신고의 좋은 대안재였다. 특히 영국은 동성애자 커플의 결혼은 불법이지만 법적 부부에 준하는 기본권 보장을 위해 '등록 동반자법(Civil Partnership)을 2004년부터 시행했는데, 2019년 6월에는 동성 커플 뿐만 아니라 이성 커플에게도 문이 열리게 되자 많은 이성 커플들이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2. 보유자산의 차이가 크거나 소득격차가 큰 커플
결혼했다가 이혼을 하면 자산과 소득이 높은 쪽이 재산 분할과 위자료 지급으로 많이 뜯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무거운 결혼제도 대신 PACS를 활용할 수 있다. 이혼을 하기 위해 결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다마는 살을 맞대고 몇십 년을 살았더라도 돌아서면 남이다. 이런 냉혹한 현실 속에서 혹시라도 이혼을 당해 (특히나 유럽은 유책주의가 아닌 파탄주의를 따른다) 재산분배나 위자료가 발생하게 될 리스크를 제거하거나 손실에 캡을 설정해 놓음으로써 나름의 이혼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 흔히들 생각하기에 남자들이 점점 약아져서 이혼하고 위자료 주기 싫어서 악용한다라고 떠올린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더 폭넓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혼하는데 위자료 뜯기는 게 싫은 것은 여자 쪽도 마찬가지이다. 원래부터 물려받거나 보유한 자산이 많고 특히 소득 수준도 파트너보다 월등히 높은 상황일 경우 여자도 마찬가지로 나보다 가진 것 없는 배우자에게 억울하게 이혼당하고(예: 사랑이 식었어. 더 이상 너랑 같이 살기 싫어라며 일방적으로 이혼 요구 등) 반을 뜯기면 분통 터져 거품 물 것은 마찬가지이다.
3. 반반 결혼을 추구하는 경우
우리나라에도 요즘 동등한 결혼생활을 위한 반반 결혼 추구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고 보면 가사부담이나 육아가 균등히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여성들이 결혼생활에 큰 불만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가정불화와 이혼사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시댁, 처가와의 갈등을 줄이기 위한 계약서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혼생활(공동생활수칙)에 대한 계약서를 명료하게 작성하고 어길 시에 기여분 반반을 도로 가지고 갈라선다. 아무튼 정식 결혼은 아닌 파트너십이니 이를 맺은 당사자들이나 양가 집안에서도 이 파트너십을 의식하며 긴장하지 않을까. 옛날 방식대로 이제 식구가 되었으니 잡아놓은 고기다라는 식으로 선을 넘다가는 파트너는 쉽게 돌아설 수 있으니 말이다.
쉽게 헤어지는 커플, 그 사이에 남은 자녀들
정리하자면, 남녀 모두 결혼 기피현상이 극에 달해 결혼제도를 불신하며 아무도 손해 보는 결혼을 하기 싫어하는 풍조 속에 등장한 PACS는 파트너십을 규정하는 대체재로서 나름의 역할을 해 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결혼 생활을 좀 더 성실히 이행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는 있겠지만 실상은 이렇단다. 엄마 아빠가 결혼한 부부이던 생활 동반자 관계인가와 상관없이 헤어질 부부는 쉽게 잘들 헤어지고 여전히 이혼율과 한부모가정 비율은 매우 높다. 아동복지와 교육에 관한 한 기혼, PACS, 한부모가정 모두 차별을 두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부모가 갈라섰다고 길거리에 나앉고 학교도 못 다니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결합 형태가 어떤 형태이든 간에 아이들은 부모가 살다가 갈라서면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되고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청소년의 우울증 증가 또한 큰 사회적 문제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모들, 쉽게 가정이 깨지는 풍조 속에 자라난 자녀들이 결혼제도에 대해 처음부터 옹호하지 않게 되어 결혼율 자체가 떨어지는 현상이 만연하게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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