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대인신뢰도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카페에서 잠깐 화장실을 다녀올 때 소지품을 자리에 그대로 두고 와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이 촬영한 실험카메라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소매치기를 당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은 반면 유럽에서는 아직도 소매치기가 극성이다. 이 유튜브 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 다양한 반응들 중에서 ‘어딜 가나 cctv가 감시하고 있으니 당연하다.’라는 코멘트는 빠지지 않는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9년에 친구들과 지하철을 타고 테크노마트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같이 스티커 사진을 찍다가 한 친구가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 너무 놀라고 망연자실한 우리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소매치기를 당했던 친구가 플랫폼 반대편에 있는 어떤 남자애들을 가리키며 쟤네들이 가져간 것 같다고 했다.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났지만 우리는 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이미 현장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고 입증할 증거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이런 일을 당했다면 머물렀던 곳 cctv들을 몇 번 돌려 범인을 검거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때 일을 떠올려 보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코멘트이다.
우리나라에도 과거 버스와 지하철에 소매치기와 치한이 많이 있었다. cctv가 잡범을 많이 감소시켰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느 정도로 영향을 주었는가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는 일단 쉽지 않다.
이제 20년 전과는 달리 자동차마다 블랙박스가 달려있는 것은 물론이요, 어딜 가나 범죄예방을 위해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일상이 되어있다. 은행 거래를 위해 실명으로 계좌를 발급받고 모든 금융거래에 대해 전산 기록이 남는다. 이렇게 개인을 범죄피해로부터 예방할 수 있는 기술은 지난 30년 간 크게 발전해 안전 기록 장치가 일상화가 되었는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역으로 떨어지고 있는 현상은 큰 아이러니이다.
코로나19 이후 감소한 대인신뢰도
지난 3월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발간한 ‘국민 삶의 질 2021’ 보고서 중에는 ‘대인신뢰도’라는 항목이 있었다. 대인신뢰도 지수란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인구의 비율로, 가족이나 친구 등 자신과 친밀한 사람들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에 대해 ‘매우 믿을 수 있다’ 혹은 ‘약간 믿을 수 있다’라고 응답한 비율의 합이다.
대인신뢰도는 2020년 50.3%로 1년 전인 2019년의 응답 대비 15.9% 포인트나 하락했으며, 이는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최저치이다. 반면 의료계(71.2%), 교육계(64.8%), 지방자치단체(55.5%) 등 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47%로 2019년(41.5%)에 비해 5.5% 포인트 상승했다. 다행히도 2021년도 조사에서는 59.3%로 소폭 반등하였으나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까지는 회복하지 못했다. 응답자의 성별로 구분해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대인신뢰도가 다소 높은 편이며, 도농 별로 구분해 보았을 때는 농촌지역이 도시보다 연도별 편차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사람 간의 교류가 크게 줄어든 환경을 감안했을 때, 여가활동, 사회참여, 사회적 관계와 관계된 지표들의 전반적인 하락세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대인신뢰도가 전년도에 비해 15% 이상 급감했다는 점은 눈여겨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